본문 바로가기
글쓰고 글씨쓰고 글쓰고 글씨쓰고

<이타카> 콘스탄틴 P. 카바피

읽는 시간 약 10분
06330001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카바피의 시 《이타카》와 하현우가 말하는 꿈

콘스탄틴 카바피라는 시인을 알게 된 것은 문학책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가수 하현우 때문이었다. 하현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국카스텐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을 때였다. 높은 음을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올리는 것을 보면서 노래를 참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프로그램 자체가 서커스 마냥 가수들의 고음 경연 대회로 흘러가는 것 같아 꾸준히 챙겨 보지는 않았다.

하현우라는 음악인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복면가왕’에서였다. 고음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낮은 음역에서도 목소리가 안정적이었고 한 곡 안에서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때부터 국카스텐의 앨범과 하현우가 부른 노래를 하나씩 찾아 듣기 시작했다. 예전 인터뷰도 찾아보면서 음악뿐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음악을 대하는 생각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현우가 여러 문신 가운데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이타카’에서 가져온 문장을 가슴에 새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나는 이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타카가 오디세우스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타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도대체 어떤 시이기에 한 사람이 그 문장을 몸에 새길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카바피의 ‘이타카’를 찾아 읽었다. 과연, 몸에 새길 정도로 좋은 문장들의 향연이었다.

하현우를 통해 처음 만난 이타카

콘스탄틴 카바피는 1863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리스계 시인이다. ‘이타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카바피 아카이브에는 이 작품의 육필 원고도 남아 있다.

시의 출발점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왕국 이타카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수많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귀향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 이타카는 오디세우스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실제 고향이다.

카바피는 이 오래된 신화를 가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타카를 향해 떠날 때 그 여행이 길기를 바라라고 한다. 키클롭스와 포세이돈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고,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만나고 여러 도시에서 배우며 풍요로운 경험을 쌓으라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이타카는 더 이상 그리스의 작은 섬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도달하고 싶어 하는 목적지가 된다. 하현우 역시 이 시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2018년 첫 솔로 앨범 <Ithaca>를 발표하면서 그는 이타카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나 목표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으며, 꿈은 물질적인 보상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나침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첫 솔로 앨범 제목도 결국 <Ithaca>가 되었다. 실제 이타카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감정과 이미지를 음악으로 옮겼다. 흥미로운 것은 카바피의 시를 좋아하던 한 음악가가 결국 실제 이타카까지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그 안에서 하나의 문장을 발견하고, 그 문장을 몸에 새겼다. 언젠가 그 섬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까지 여행했고,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을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 자체가 카바피가 ‘이타카’에서 말하고자 했던 여행과 닮아 있다. 중요한 것은 이타카라는 섬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곳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들이 있다.

hhw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대하여

내가 ‘이타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시의 후반부다. 오랜 여행 끝에 이타카에 도착했는데 막상 그곳이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처음 읽었을 때 이것이 단순히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목표를 세울 때 그곳에 도착하면 무언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 같고, 취업하면 삶이 안정될 것 같다. 돈을 많이 벌면 자유로울 것 같고, 집을 가지면 불안이 사라질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책 한 권을 출간하면 자신의 삶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현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오랫동안 꿈꾸던 무대에 실제로 서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덜 달콤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 꿈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곳으로 가는 동안 경험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바피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여기서 목적지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목표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고 한다. 목적지가 있어야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곳에 도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이타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물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해 시작한 여행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카바피의 ‘이타카’는 원작 <오디세이아>를 흥미롭게 뒤집는다. 오디세우스에게 키클롭스와 포세이돈은 실제로 자신을 가로막는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카바피의 시에서는 그런 존재들을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신화 속 괴물이 인간 내면의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도 우리의 삶으로 바뀐다. 키클롭스와 포세이돈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평가일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카바피의 이타카는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향에 가깝다.

하현우가 꿈을 ‘나침반’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 인상적이다. 나침반은 목적지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지 않는다. 길을 대신 걸어주지도 않는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지금 나에게 이타카는 무엇일까

이 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돌아온다. ‘그렇다면 나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평생 같지 않을 것 같다. 스무 살의 이타카와 마흔 살의 이타카가 같을 필요도 없다. 하나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다시 다른 이타카를 발견할 수도 있다.

현재 나의 이타카는 ‘독립’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목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내 명의의 집과 차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곳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타카다.

물론 실제로 그곳에 도착하면 지금 상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집이 생긴다고 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삶에서 더 이상 불안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멀리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보다 평범할 수도 있다.

예전 같았다면 이런 생각은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이루었는데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카바피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답을 준다. 이타카가 없었다면 애초에 여행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가 독립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다면 그 과정에서 나는 지금의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실패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조금씩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바라던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생각보다 황량하다고 해서 그 여행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을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현재보다 나아졌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타카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이타카를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적지는 언젠가 바뀔 것이다. 독립이라는 이타카에 도착한다면 그때의 나는 또 다른 섬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타카의 역할은 영원히 머물 완벽한 장소가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떠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현우의 문신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된 시 한 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도착했을 때 무엇을 얻을 것인가만 생각하지 말고, 그곳으로 가는 동안 무엇을 보고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잊지 말라는 말. 지금의 나에게 카바피의 ‘이타카’는 그렇게 읽힌다.

06330002
HiHello
함께 보면 좋은 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