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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알랭 드 보통

읽는 시간 약 4분
happiness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Museum SAN)’에 갔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날씨가 눈부시게 좋았던 어느 날, 우연히 발걸음을 한 그곳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다행히 주변 사람들도 공간의 분위기를 닮은 듯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날 일행들과 나눈 대화마저 평소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정갈하게 느껴졌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행복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Happiness)>은 바로 이 마법 같은 순간을 철학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조종하고, 나아가 우리의 정체성까지 빚어내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는 결핍된 것을 건물에서 찾는다

흔히 사람들은 ‘예쁜 건물’이나 ‘비싼 인테리어’를 허영심이나 부의 과시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 공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건축물이 우리가 삶에서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만 현재 결핍되어 있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삶이 혼란스럽고 통제 불능인 사람은 시각적으로 완벽한 대칭과 질서를 갖춘 미니멀한 공간에서 강렬한 위안을 얻는다. 반대로 팍팍한 규율과 중압감에 짓눌려 사는 사람은 따뜻한 나무 질감과 곡선이 가득한 유기적인 건축물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결국 우리가 집을 꾸미고 공간을 선택하는 행위는, 우리 내면의 부서진 조각을 맞추고 심리적 균형을 찾으려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실용적인 치유 과정이다.

이상적인 자아를 비추는 거울

건물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콘크리트 상자가 아니다. 공간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천장이 까마득하게 높은 고딕 성당에 들어가면 세속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경건해져야 할 것 같은 압도감을 느낀다. 반면, 빛이 쏟아지는 넓은 통창과 단정한 가구가 놓인 거실은 우리에게 “너도 이 공간처럼 여유롭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내가 뮤지엄 산의 정돈된 야외 공간에서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정갈해진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공간이 지시하는 분위기에 기꺼이 동화되려는 습성이 있다. 환기가 안 되고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인 어두운 방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금세 무기력해지고 만다. 공간은 단순하고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도덕성을 끊임없이 교정하는 능동적인 행위자인 셈이다.

실용적인 인테리어 매뉴얼을 기대했다면

물론 당장 전셋집의 좁은 거실을 어떻게 넓어 보이게 만들지, 어떤 브랜드의 소파를 사야 할지 구체적인 팁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꽤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책에는 실용적인 가구 배치 도면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볼 법한 트렌디한 인테리어 팁은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철학, 미술사, 문학을 쉴 새 없이 넘나들며 공간과 미학에 대한 다소 관념적인 사유가 이어진다. 알랭 드 보통 특유의 만연체와 철학적 은유 때문에 어떤 페이지는 꽤 끈기를 가지고 읽어내야 한다. “당신의 집을 이렇게 고치시오”라는 명쾌한 정답을 쥐여주는 대신, 끊임없이 스스로의 내면과 거주 공간을 대조해 보게 만드는 불편한 질문들을 던질 뿐이다.

내 방을 바라보는 해상도의 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평범한 방구석이 완전히 다른 해상도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벽지의 색깔, 가구의 배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가 나의 불안과 우울을 어떻게 건드리고 있는지, 혹은 나를 어떻게 위로하고 있는지 감각하게 된다. 아파트 평수를 늘리거나 비싼 명품 가구를 들이는 것만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이 나의 내면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의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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