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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향하여 (Towards a New Architecture)> 르 코르뷔지에

읽는 시간 약 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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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건축이나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문장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923년,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건축을 향하여(Towards a New Architecture)>라는 도발적인 책을 통해 세상에 던진 묵직한 돌직구다.

100년 전 유럽 건축계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고딕이나 르네상스 양식을 흉내 낸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건물 겉면에 덕지덕지 발라대는 낡은 허세에 빠져 있었다. 코르뷔지에는 이 ‘쓸데없는 장식’을 몽땅 뜯어내 버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가 찬양한 최고의 아름다움은 역사적인 조각상이 아니라 자동차, 증기선, 비행기처럼 철저하게 ‘목적과 기능’에 맞게 설계된 순수한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이었다.

기계가 된 집, 공간의 패러다임을 뒤집다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방식을 넘어 인류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개조한 거대한 선언문이다.

건물을 지면에서 띄우는 필로티, 하중을 견디는 벽 대신 기둥을 써서 실내 구조를 마음대로 바꾸는 자유로운 평면, 건물 외관을 입맛대로 디자인하는 자유로운 파사드, 실내 깊숙이 햇빛을 끌어들이는 수평창, 그리고 옥상을 정원으로 활용하는 옥상정원.

이 5원칙을 통해 집은 비로소 인간의 생리적, 기능적 욕구를 최적의 상태로 충족시켜 주는 ‘생활 기계’로 거듭났다. 엔진과 바퀴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최상의 주행 성능을 내는 자동차처럼, 집 역시 채광과 환기, 동선이라는 기계적 효율성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당시로서는 혁명이자 충격이었다.

극한의 효율성이 주는 쾌감과 서늘한 피로감 사이

이 혁명적인 사상은 대량 생산이라는 산업화의 흐름과 맞물려 전 세계 대도시의 풍경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좁고 위생이 불량했던 전통적인 골목길 대신 널찍한 직선 도로와 규격화된 고층 빌딩이 도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규격화된 부재를 조립해 짓는 아파트는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에게 저렴하고 위생적인 거주 공간을 제공하며 ‘주거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모든 혁신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다. 철저히 기능과 효율만 따지는 그의 건축 철학은 종종 거주자에게 묘한 피로감을 안긴다.

나 역시 출장 차 머물렀던 한 신축 오피스텔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공간은 완벽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세탁기, 냉장고, 수납장이 오차 없이 벽면을 채운 빌트인 시스템은 버려지는 동선 하나 없이 극도의 효율성을 자랑했다. 처음엔 그 군더더기 없는 편리함에 “이게 바로 코르뷔지에가 원했던 완벽한 기계적 쾌감인가” 싶어 감탄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묘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장식 하나 없이 시멘트와 유리로만 마감된 차가운 로비, 입주자의 취향이나 개성이 개입할 틈조차 없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규격화된 평면도. 인간의 생활마저 부품처럼 규격화하려는 이 ‘완벽한 기계’ 속에서, 거주자는 공간을 통제하는 주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맞춰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전락한 듯한 서늘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전 세계 스카이라인을 똑같은 형태의 성냥갑 아파트와 유리 상자 빌딩으로 덮어버린 ‘획일화의 원흉’이라는 후대의 뼈아픈 비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건축을 향하여》가 지닌 폭발적인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과거의 관습에 질척이던 건축을 현대의 기술과 기능의 영역으로 거칠게 멱살 잡고 끌고 온 이 위대한 선언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비실용적인 장식과 낡은 양식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기계가 철과 시멘트의 덩어리였다면, 스마트폰과 AI 기술로 온 집안을 통제하는 지금의 주거 형태는 어쩌면 코르뷔지에가 꿈꿨던 ‘살기 위한 기계’의 궁극적인 진화형일지 모른다. 효율성이 극대화될수록 인간성이 소외되는 모순 속에서, 이 100년 전의 낡은 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사는 그 기계는 과연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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