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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감각 (The Eyes of the Skin)> 주하니 팔라스마

읽는 시간 약 4분
pallasmaa

몇 년 전 대전 외곽 산속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지금 그 공간을 다시 떠올려 보면 내외부 인테리어가 무슨 색이었는지, 가구 배치가 어땠는지는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내 뇌리에 가장 깊게 박힌 건 스마트폰 렌즈에 담기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주변에서 훅 끼치던 축축한 흙내음, 짙은 풀향기, 그리고 마당 한 가운데 캠프 파이어처럼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던 장작의 매캐하고 따뜻한 나무 냄새였다.

스마트폰 렌즈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이 공기와 냄새야말로 우리가 공간을 기억하는 진짜 방식이다. 핀란드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의 <건축과 감각(The Eyes of the Skin)>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스타그램 화보용으로 전락한 현대 건축

요즘 새로 생기는 핫플레이스나 신축 빌딩을 보면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매끈한 유리 커튼월, 잡티 하나 없는 노출 콘크리트, 완벽한 대칭. 사람들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오늘날의 건축은 철저하게 ‘3D 렌더링 이미지’로 소비된다.

팔라스마는 오직 눈(시각)에만 집착하는 이 기형적인 현상을 ‘시각의 독재’라고 부르며 매섭게 고발한다. 투명하고 매끄러운 유리 상자 속에 갇힌 현대인은 세계와 끈적하게 교감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저 유리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는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각적 완결성에만 집착할수록,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은 점차 냄새도 온도도 없는 차가운 수술실처럼 변해버린다.

피부로 읽는 공간, 렌더링 화면이 지워버린 것들

저자는 눈이 아닌 온몸의 감각, 특히 가장 원초적인 기관인 ‘피부(촉각)’를 건축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짜 살아있는 건축은 도면 위가 아니라 신체의 궤적 속에서 완성된다.

  • 문고리의 감각: 묵직한 황동 문고리를 쥘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서늘함과 환대의 온도.

  • 발걸음의 울림: 속이 빈 라미네이트 바닥재가 아니라, 두꺼운 원목을 밟을 때 발바닥과 귓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의 밀도.

  • 시간의 냄새: 대전의 그 산속 카페처럼, 비바람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녹슬고 늙어가는 돌과 나무가 뿜어내는 공간 고유의 체취.

이런 비시각적인 차원들이 겹겹이 쌓일 때, 공간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 닻을 내린다.

부동산 엑셀 표에 밀려 절판된 텍스트

한국에서는 2019년에 번역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출 이자를 맞추고 평당 분양가를 쥐어짜야 하는 한국의 척박한 부동산 개발 논리 앞에서, ‘신체와 교감하는 물성’이나 ‘공간의 냄새’ 따위는 엑셀 표에 들어갈 수 없는 사치스러운 낭만이니까. 공장제 규격 자재를 발라 빠르게 완공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 시장에서, 이 현상학적인 텍스트는 너무 일찍 폐기 처분되었다.

그럼에도 이 얇은 책이 남기는 여운은 길다. 모니터 앞의 화려한 이미지에 취해 정작 그 공간을 채울 공기의 온도와 사람의 체취를 잊어버린 얄팍한 시각 중심주의의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다.

눈으로만 훑고 지나간 핫플레이스는 반년이면 기억에서 지워진다. 하지만 장작 타는 냄새와 풀향기로 기억되는 대전의 그 카페처럼, 코끝과 귀와 피부가 온몸으로 감각한 공간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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