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시학 (La Poétique de l’Espace)> – 가스통 바슐라르

평당 가격, 역세권 여부, 전용면적 몇 제곱미터 같은 숫자가 집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신축 아파트에 살아도 묘하게 마음이 겉돌 때가 있고, 낡고 좁아터진 어린 시절 단칸방의 구석 자리가 불현듯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은 줄자와 부동산 계산기를 집어던지고 공간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그에게 공간은 콘크리트 상자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무의식이 엉겨 붙어 숨 쉬는 ‘몽상(Rêverie)의 은신처’다.
집을 해부하는 수직의 상상력: 다락방과 지하실
바슐라르는 집을 평면도가 아니라 ‘수직적인 단면’으로 쪼갠다. 지붕부터 지하까지 이어지는 집의 뼈대는 곧 인간의 정신 구조와 정확히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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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서까래가 손에 닿을 듯 낮고 먼지 쌓인 다락방은 세상의 소음에서 도망쳐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곳이다. 하늘과 맞닿은 이곳에서 인간은 명료한 이성과 순수한 몽상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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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실은 인간의 억눌린 무의식과 원초적인 공포를 품는다. 밤이 되면 집을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둠이 웅크린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집 전체를 단단한 대지에 뿌리박게 만드는 근원이다.
오늘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들어가는 아파트는 이 수직적 깊이를 잃어버렸다. 위층도 남의 집, 아래층도 남의 집인 샌드위치 구조 속에서 현대인은 다락방의 고요한 비상도, 지하실의 묵직한 공포도 박탈당한 채 얄팍한 2차원 평면 위에 납작하게 갇혀 산다. 바슐라르의 글이 묘한 결핍감을 건드리는 이유다.
서랍을 여는 순간 터져 나오는 우주
이 책의 백미는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옷장, 서랍, 상자 같은 지극히 사소한 틈새로 시선을 들이밀 때다.
누구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낡은 열쇠, 버리지 못한 편지 묶음, 사소한 기념품 하나쯤은 품고 산다. 바슐라르는 서랍을 여닫는 단순한 행위조차 거대한 심리적 사건으로 읽어낸다. 서랍을 여는 것은 봉인해 둔 과거의 기억을 깨우는 일이고, 닫아서 잠그는 것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나만의 비밀을 지켜내는 방어 본능이다.
물리적인 부피는 가로세로 수십 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상자 하나가 한 사람의 우주 전체를 담아낼 수도 있다는 통찰이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아파트 거주자가 마주하는 벽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면 부딪히는 한계도 뚜렷하다.
첫째, 유럽 19세기 단독주택의 낭만에 과도하게 빚지고 있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원형적 공간은 벽난로가 있고 지붕 위로 비바람 치는 소리가 들리는 전형적인 서구의 옛집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직 규격화된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만 자란 세대에게 ‘폭풍우 치는 밤 집이 나를 품어 안는 원초적 요람의 감각’은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 공감하기 힘든 낯선 판타지에 가깝다.
둘째, 텍스트가 철저하게 시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이 책은 공간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릴케나 보들레르 같은 시인들의 구절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직조해 낸 산문시에 가깝다. 명확한 논리 구조나 실용적인 건축 인사이트를 기대하고 펼쳤다가는 뜬구름 잡는 은유의 홍수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부동산의 언어를 지우고 내 방을 응시하는 법
그럼에도 이 불친절하고 몽환적인 텍스트가 7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매일 집의 평수와 실거래가에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하지만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고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웠을 때 우리를 안아주는 건 아파트의 시세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방구석의 익숙한 공기와 나를 지켜주는 벽의 감각이다.
바슐라르는 묻는다. “당신이 머무는 그곳은 단순한 자산인가, 아니면 당신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진짜 ‘집’인가.” 번지르르한 인테리어 사진에 피로해진 이들에게 이 책은 공간을 느끼는 감각의 피부를 다시 되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