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고 글씨쓰고 글쓰고 글씨쓰고

<광기의 뉴욕 (Delirious New York)> 렘 콜하스

읽는 시간 약 5분
8971215739 2

근대 건축가들은 햇빛이 잘 들고 녹지가 푸르른 교외형 이상 도시를 꿈꿨다. 과밀과 혼잡은 척결해야 할 질병 취급을 받았고, 반듯한 바둑판 모양의 도로는 ‘영혼 없는 자본주의의 획일성’이라며 조롱당했다.

그런 고상한 척하는 건축계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 괴작이 바로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1978년 저작 <Delirious New York>이다. 국내에는 2001년 도서출판 세진사에서 원저를 손질하고 관련 아티클들을 보충해 <광기의 뉴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부제부터 노골적인 이 책은 맨해튼의 지독한 혼잡과 천박한 자본주의적 과밀을 저주하기는커녕,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완벽한 인공 생태계라며 열광적으로 찬양한다.

그리드와 엘리베이터가 완성한 뻔뻔한 인공 낙원

콜하스가 보기에 맨해튼의 진짜 매력은 ‘위선 없는 노골적 욕망’에 있다. 1811년 맨해튼을 가로세로로 난도질한 격자형 구획(Grid)은 건축적 이상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땅을 쪼개서 팔아먹기 위한 투기용 칼질이었다. 하지만 콜하스는 이 무심한 사각형 블록이야말로 인간에게 최고의 자유를 줬다고 본다. 블록의 껍데기만 규격에 맞추면 그 내부에서는 카지노를 짓든, 복싱 경기장을 열든 도시가 일절 간섭하지 않는 뻔뻔한 평등함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엘리베이터와 철골 구조가 더해지며 도시는 완전히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다. 과거의 건물은 1층의 용도가 꼭대기 층까지 지배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층과 층 사이의 맥락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멀리 뉴욕까지 갈 것도 없다. 콜하스가 찬양한 이 기괴한 ‘수직적 혼돈’은 한국의 흔한 상가 건물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진화했다. 한 달에 한 번, 회사 상사의 골프장 예약을 성공하기 위해 인터넷 속도가 빠른 곳을 찾다 어쩔 수 없이 방문하는 회사 근처 피씨방 건물이 딱 그렇다.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1층 로비를 거치지 않고 길가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구조다. 버튼 앞 층별 안내도를 보면 그야말로 욕망의 뷔페가 따로 없다. 1층과 2층은 횟집, 3층은 고깃집, 4층은 피씨방, 그리고 5층부터 꼭대기까지는 숙박업소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벽면에는 숙박업소 주인이 붙여둔 살벌한 경고문이 떡하니 걸려 있다. “예약자만 이용 가능. 워크인이나 대실 절대 불가. 예약 없이 올라오면 영업 방해로 신고함.”

술에 취해 고기를 굽는 사람, 모니터 앞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 그리고 은밀하게 숙박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똑같은 사각형 콘크리트 껍데기 안에서 층간 슬래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 채 각자의 맹렬한 목적을 소비한다. 으름장을 놓은 그 경고문을 보며 피식 웃을 때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생태계라는 생각이 든다. 외관은 그저 번지르르한 유리와 석재 벽인데 내부는 예측 불가능한 온갖 프로그램이 층층이 포개지는 현상, 이것이 바로 콜하스가 갈파한 ‘건축의 껍데기와 알맹이의 완벽한 분리’다.

현란하지만 읽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 텍스트

이 책의 흡인력은 압도적이지만, 진지한 학술서나 실무 지침서를 기대한 독자에겐 난독의 늪이 된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콜하스는 이 책을 논문처럼 쓰지 않았다. 옛날 신문 찌라시, 엽서 사진, 광고 문구, 본인의 과대망상에 가까운 시적 비약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문장은 화려하고 도발적이지만,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이게 역사적 팩트인지, 아니면 콜하스 혼자 취해서 쓴 도시 소설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세진사 판본에 여러 해설 아티클이 덧붙여진 것도 이런 불친절한 텍스트의 맥락을 번역자 나름대로 메우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게다가 실무적인 해법은 단 하나도 없다. 책 전체가 20세기 초반 맨해튼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바치는 찬가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교통 체증, 극단적인 부동산 불평등,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콜하스는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 맨해튼의 카오스를 멋대로 미화한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늘 따라붙는 이유다.

모범생 도시를 향해 날리는 날카로운 조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건축학도들의 필독서로 군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늘 도시를 ‘정돈되고 쾌적하며 친환경적인 모범생’으로 가꾸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실제 도시는 언제나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탐욕, 과밀이 뿜어내는 마찰열, 뒤틀린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 조용하고 쾌적하기만 한 도시는 결국 죽은 도시다. <광기의 뉴욕>은 세련된 척하는 모든 도시 담론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겨버리고, 도시의 본질이란 결국 통제되지 않는 인간 욕망의 난장판임을 냉소적이면서도 짜릿하게 확인시켜 준다.

HiHello
함께 보면 좋은 글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