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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생산 (La production de L’espace)> – 앙리 르페브르

읽는 시간 약 6분
henry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 걸린 조감도를 보면 세상에 그보다 더 완벽하고 평화로운 도시는 없다. 반듯한 도로, 일정한 간격의 녹지, 그 한가운데 우뚝 선 고층 타워. 하지만 그 조감도가 현실의 땅 위에 세워지기 위해,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굽이진 골목길과 작은 상점들이 어떤 폭력적인 방식으로 밀려났는지는 그 매끈한 그림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고전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은 바로 이 서늘한 진실을 파고든다. 그에게 공간은 신이 내린 자연도 아니고, 그저 사물과 사람을 담아두는 텅 빈 상자도 아니다. 공간은 철저하게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하고 찍어내는 ‘상품’이자, 권력 관계가 투영된 ‘정치적 결과물’이라는 과감한 선언이다.

공간을 쪼개는 3가지 층위: 르페브르의 삼원론

르페브르는 자본주의가 도시와 인간의 일상을 어떻게 장악하는지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공간을 세 가지 층위로 날카롭게 해체한다.

첫째, 지각된 공간(공간적 실천)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출퇴근하며 몸으로 부딪히는 물리적인 동선이다. 지하철 환승 통로, 아파트 단지의 보차분리 도로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이동 경로를 뜻한다. 대중에게는 편리해 보이지만, 사실 이는 노동자가 가장 효율적으로 일터로 이동하고 주말에는 쇼핑몰로 소비하러 가도록 교묘하게 유도된 자본주의적 동선이다.

둘째, 구상된 공간(공간의 재현)이다. 도시계획가, 관료, 건설사, 디벨로퍼들이 모니터와 캐드(CAD) 도면 위에서 자를 대고 선을 긋는 머릿속의 추상적 공간이다. “용적률 300%”, “상업지구 지정”, “재건축 정비구역” 같은 기호와 숫자로 표현된다. 이 차가운 도면 위에서 원래 그곳에 켜켜이 쌓여 있던 사람들의 체취나 골목의 끈적한 역사는 숫자에 밀려 가볍게 지워진다.

셋째, 살고 있는 공간(재현의 공간)이다. 이것은 도면의 폭력에 맞서는 실제 거주자들의 펄떡이는 체험과 기억이다. 자본과 권력이 정해준 원래의 용도를 벗어나, 사람들이 공간을 제멋대로 점유하고 비틀어버리는 순간 생겨나는 저항의 영역이다.

도면 위 화상 회의실이 사내 낮잠 벙커가 되기까지

이 세 가지 공간이 빚어내는 희극적인 충돌은 멀리 신도시 재개발 현장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 안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우리 회사에는 최근 온라인 미팅을 지원하기 위해 1인용 폰부스 형태의 작은 회의실 4개가 설치되었다. 경영진과 오피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도면 위에서 이 공간은 철저하게 ‘비대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화상 회의실(구상된 공간)’로 기획되었다. 직원들은 그 의도대로 그곳에 들어가 거래처와 줌 미팅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의 톱니바퀴는 전혀 다르게 굴러간다. 직원들은 이 완벽하게 고립된 1인용 공간을 온라인 미팅보다는 쏟아지는 오후의 피로를 몰래 해결하는 ‘낮잠 허브’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심지어 어느 날 아침에는 건물 관리인이 청소를 하러 문을 열었다가, 전날 회식 자리에서 과음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잠든 직원을 발견해 그 지독한 과음의 흔적까지 치우느라 생고생을 한 적도 있다(그 용감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사내에서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 어처구니없고 웃픈 사내 에피소드야말로 르페브르가 말한 ‘살고 있는 공간(재현의 공간)’의 완벽한 축소판이다. 권력(회사 경영진)이 아무리 훌륭한 목적을 부여해 공간을 설계하고 통제하려 들어도, 인간은 규격화된 기계 부품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자신만의 생명력과 일탈로 공간의 용도를 전복시켜 버린다. 르페브르는 이처럼 구상된 공간의 억압과 살고 있는 공간의 뻔뻔한 저항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팽팽한 긴장감이야말로, 진짜 공간이 살아 숨 쉬며 ‘생산’되는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 거대한 고전이 주는 지독한 피로감

르페브르의 통찰은 번뜩이지만,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은 끔찍할 만큼 고통스럽다.

무엇보다 문장이 지독하게 난해하고 장황하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헤겔 철학, 현상학, 구조주의 비판이 단 한 문장 안에서 거미줄처럼 엉켜 돌아간다. 번역서 특유의 딱딱한 한자어까지 겹치면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문맥을 쥐기 힘들다. 프랑스 철학자 특유의 현학적인 문체 탓에 50페이지쯤 넘기다 보면 “공간이 생산된다는 그 당연한 말을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꼬아서 해야만 속이 시원했나”라는 탄식이 절로 튀어나온다.

실천적인 해법이 모호하다는 것도 뼈아픈 단점이다. 자본주의가 도시를 어떻게 삼키고 인간을 소외시키는지 그 구조는 기가 막히게 해부해 놓았지만, “그래서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맥이 빠진다. 그가 후반부에 제시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 같은 구호들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지언정, 당장 내일 치솟는 전세금을 걱정하고 젠트리피케이션에 쫓겨나는 세입자들에게 쥐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매뉴얼은 되지 못한다.

조감도의 뻔뻔한 거짓말을 간파하는 렌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같은 쟁쟁한 현대의 지리학자들과 도시학자들이 왜 여전히 르페브르의 텍스트를 성서처럼 물고 늘어지는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흔히 아파트값이 오르고 낡은 동네가 매끈하게 재개발되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 논리나 자연스러운 발전으로 여긴다. 하지만 르페브르의 렌즈를 장착하고 나면 우리가 도시에 던지는 질문의 질이 달라진다. “이 화려한 도시는 대체 누구의 이윤을 위해 기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의 일상과 추억을 가차 없이 갈아 넣어 생산되었는가?”

번지르르한 부동산 광고판과 조감도 뒤에 숨겨진 거대 자본의 폭력적인 민낯을 직시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이 불친절하고 오만한 텍스트와 치열하게 씨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매일 걷던 출퇴근길 보도블록과 낮잠 장소로 변질된 뻔한 사무실 회의실마저도 권력과 저항이 얽힌 치열한 정치적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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