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디자인 (Emotional Design)> 도널드 노먼

예쁜 쓰레기를 사놓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본 적이 있다면,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의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은 그 변명에 훌륭한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는 책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학지사에서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어 헌책방을 뒤져야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디자인과 인지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디자인은 예뻐야 한다’는 피상적인 접근을 넘어, 인간의 뇌가 사물을 인지하고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냉정하게 해체하기 때문이다.
뇌를 지배하는 세 가지 디자인 층위
노먼은 인간이 특정 물건에 매혹되거나 불쾌함을 느끼는 과정을 세 가지 차원으로 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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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 차원(Visceral): 이성을 거치지 않는 생리적 반응이다. 매끈한 마감, 선명한 색감, 손에 닿는 기분 좋은 촉감 등 시각적 자극 후 단 몇 초 만에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원초적인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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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적 차원(Behavioral): 철저한 사용성의 영역이다. 아무리 심미성이 뛰어나도 원하는 기능을 직관적으로 실행할 수 없거나 복잡한 설명서를 요구한다면 실패한 디자인이다. 훌륭한 행동적 디자인은 사용자를 통제력 있는 똑똑한 주체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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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적 차원(Reflective): 자아와 허영, 정체성의 영역이다. 기능이 떨어지고 비싸더라도 굳이 기계식 시계를 차고, 한정판 만년필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물건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대변해 주는지, 내게 어떤 서사를 부여하는지가 핵심으로 작용한다.
주방에 모셔둔 필립 스탁의 레몬 즙짜개
이 세 가지 차원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며, 현실의 디자인은 늘 모순을 내포한다. 책에 등장하는 가장 통쾌한 사례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레몬 즙짜개 ‘주시 살리프(Juicy Salif)’다.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이 기하학적인 금속 조형물은 본능적(시각적) 차원에서 압도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하지만 막상 레몬을 짜면 즙이 사방으로 튀고 씨를 걸러주지도 못한다. 행동적(기능적) 차원에서는 최악의 도구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주방 한가운데 이 불편한 쇳덩어리를 전시한다. 반성적 차원에서 엄청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적인 오브제를 감상할 줄 아는 안목”을 과시하기 위한 완벽한 대화의 매개체로 작동한다.
실무자를 위한 매뉴얼이 아닌 사유의 도구
물론 이 책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기대하는 실무 지침서로 접근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심미성(본능), 편의성(행동), 브랜드 가치(반성)가 실무 현장에서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지 완벽한 처방전을 건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인지과학자의 시선에서 쓰인 원론적인 통찰이기에, 단가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치이는 현업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현실과의 괴리를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쏟아지는 수많은 제품 중 왜 어떤 것은 폐기되고 어떤 것은 애착 대상으로 살아남는지 그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이 책만큼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텍스트도 드물다. 디자인은 단순한 조형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뇌와 무의식을 조종하는 고도의 심리학임을 명징하게 증명해 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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