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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승리 (Triumph of the City)> 에드워드 글레이저

읽는 시간 약 4분
triumph

환경 운동가들은 시골 전원주택의 여유로운 삶을 칭송하고, 인문학자들은 도심의 빽빽한 아파트 숲을 삭막한 콘크리트 지옥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는 이런 낭만주의자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다.

그의 주장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단호하다. “자연을 보호하고 싶다면 시골로 가지 마라. 닥치고 도시 한복판으로 기어들어와 빽빽하게 모여 살아라.”

낭만을 깨부수는 세 가지 현실 폭격

글레이저는 방대한 경제 지표를 들이밀며 왜 ‘극단적인 밀집’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지 증명한다.

  • 도시가 시골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다: 교외의 넓은 단독주택에서 살면 매일 차를 몰고 출퇴근하며 기름을 길바닥에 뿌려야 한다. 반면 뉴욕이나 서울 같은 고밀도 대도시의 주민은 지하철을 타고 좁은 아파트에서 벽을 공유하며 난방열을 아낀다. 1인당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 효율을 따지면 맨해튼 중심가의 주민이 숲속 통나무집 거주자보다 훨씬 생태적이다.
  • 혁신은 좁은 공간에 욱여넣을 때 터진다: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처럼 비싼 땅값에도 기를 쓰고 모이는 이유는 ‘대면 접촉(Face-to-face)’에서 발생하는 지식의 확산 속도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짧은 잡담,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의 총량이 결국 국가 경제를 떠받친다.
  • 주거난의 주범은 엉뚱하게도 ‘환경·역사 보존가’들이다: 집값이 미쳐 날뛰는 진짜 이유는 땅이 좁아서가 아니라, “미관을 해친다”, “역사 지구를 보존해야 한다”며 층수 제한을 걸고 재건축을 틀어막은 규제 탓이다. 글레이저의 해법은 단순하다. 규제를 풀고 하늘 높이 50층, 100층짜리 건물을 미친 듯이 지어 공급을 쏟아붓는 것 말고는 서민의 주거 비용을 낮출 방법이 없다.

한국 독자가 읽으면 묘하게 턱 걸리는 대목

이 책의 논리는 명쾌해서 읽는 내내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이 있지만, 책장을 덮고 한국의 현실을 둘러보면 물음표가 남는다.

첫째, 우리는 이미 글레이저가 꿈꾸던 세상을 살고 있다.

글레이저가 주로 비판하는 대상은 미국의 저밀도 교외화(스프롤 현상)다. 차 없이는 마트도 못 가는 널찍한 미국 동네에 “더 빽빽하게 지어라”고 외치는 건 혁신적이다. 하지만 지하철역마다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과 수도권 주민 입장에서는 “이미 숨 막힐 정도로 수직 고밀 개발을 해놨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출퇴근길에 시달리고 집값에 고통받는가?”라는 씁쓸한 의문이 먼저 든다.

둘째, 밀집이 주는 정신적 피로와 불평등을 숫자로 뭉갠다.

글레이저는 철저한 시장주의 경제학자다. 밀집이 낳는 극심한 경쟁 압박, 사생활 침해, 고밀도 도심에서 밀려난 저소득층의 좌절감 같은 인간적인 부작용은 “그래도 도시가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라는 데이터 뒤로 슬그머니 밀어둔다. 도시의 활력을 숫자로 증명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밀도 높은 공간을 견뎌내야 하는 개인의 감정까지 위로하지는 못한다.

도시를 옹호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뻔뻔한 변론

환경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작정 층수를 누르고, 전원생활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냉정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

도시는 피해야 할 악몽이 아니라, 인간이 뭉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갈고닦은 가장 효율적인 기계 장치다. 복잡한 만원 지하철과 빽빽한 고층 빌딩에 질려 귀촌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짐을 싸기 전에 글레이저가 던지는 이 차가운 계산서를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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